《스토너》리뷰 : 세월의 뒤안길에서 마주한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





번역가는 이 소설을 두고 ' 세월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모진 바람을 다 맞고 비로소 잔잔해진 삶의 뒷모습을 닮았다는 뜻이겠지요. 책장을 덮고 문득 거울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스토너의 고단한 삶 속에서 묵묵히 삶을 이겨나간 모습을 지켜보며 함께 나이 들어간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세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 소설 <스토너> 중에서


<스토너>는 특별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무지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다는 점이나 화려한 장식 없이 그저 수수하기만 한 모습, 읽고나면 애잔해지는 모습에서도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묵직한 힘이 있습니다.

아처슬론 교수의 한마디에 자신이 마법에 걸렸음을 깨닫고 영문학에 눈을 뜨던 젊은 날의 경외감, 그리고 훗날 로맥스 학과장과의 집요한 갈등 속에서도 묵묵히 서재를 지키며 연구에 몰두하던 고독한 모습은 묘하게 가슴을 울립니다. 그에게 대학과 서재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유일한 요새였던 셈입니다.

1965년 출간된 이 소설은 거의 50년이 흐른 뒤에야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주인공 만큼이나 참을성이 많은 작품인것 같더라구요.

<스토너>를 읽다보면 '실패'한 삶이 아닐까 하는 대목이 많이 느껴집니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고, 교수로서는 대학에서 총망받는 인재가 아니었고, 사랑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참을성이 많고 성실했으며 불굴의 의지와 지혜로 난관을 헤쳐나가기 보다는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리는 편이었습니다.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 소설 <스토너> 중에서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현대인의 마음으로 '반전'을 기대하게 됩니다. 아내 이디스와의 사이에서도 차라리 21세기처럼 이혼이라도 하던가, 딸에게도 자기의 목소리를 내어 딸이 자기의 삶을 살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격려해주어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죠. 특히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짧았지만 오롯이 행복했던 내밀한 사랑이야기를 읽을 때면 더욱 그렇습니다. 평생 고독했던 그가 에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온전한 삶의 기쁨을 맛보는 풍경을 마주할 때면 '다행이다, 그래 이런 반전도 있어야지, 자기 사랑을 끝까지 쟁취하는 멋진 모습도 나와야지' 하며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와 스토너는 끝까지 나의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악의 무리들은 승승장구 했고, 상황을 단번에 바꿔주는 극적인 반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몹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깨달았습니다. 





누군가는 불꽃처럼 독하게 세상을 살아내고, 또 누군가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반면 스토너는 그저 묵묵히 인내하는 수수한 삶을 택했을 뿐이지요. 하지만 삶의 형태가 어떠했든, 마지막 종착지에서 마주하는 질문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그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몇번이나 되뇌입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가 던진 이 질문은 책장을 덮는 우리에게로 고스란히 옮겨옵니다. 매일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책장을 덮고 나니 비로소 보였습니다. 그것은 실패자의 탄식이 아니라, 주어진 삶을 도망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이었다는 것을요. 

우리가 요즘 마주하는 세상은 너무 독하고 치열해서 가끔 숨이 막히곤 합니다. 미디어도, 책도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정작 내면을 돌볼 틈이 없는 우리에게, 스토너의 의 수수한 삶이 주는 나지막한 울림이 필요합니다. 거친 세상에 마모되어 가던 마음을 잠시 멈춰 세우고 "진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거울이 되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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