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주입식 교육의 비극 《수레바퀴 아래서》 vs 21세기 스스로를 교육한 《일론 머스크》

 

헤르만 헤세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책 표지 완독 후기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저역시 《수레바퀴 아래서》 아래서 책을 꼭 읽고 싶은 필독서 중의 한권으로 마음에 품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드디어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연속해서 읽은 책이 바로 《일론 머스크》 자서전(전기) 입니다. 전혀 다른 시대를 다룬 이 두 권의 책을 이어서 읽으며 저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00년 전 19세기 독일의 주입식 교육 시스템이 한 천재 소년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책이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속의 내용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교육시스템과 너무나 닮아 있더라구요.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기존의 정해놓은 틀을 깨고 나온 일론 머스크의 어린 시절과 삶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아이 스스로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답을 보여줍니다.


1. 《수레바퀴 아래서》 : 틀에 맞추는 주입식 교육의 비극


수레바퀴 아래서 본문 172페이지 주입식 교육 비판 구절

소설 속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의 기대와 주입식 교육 시스템 속에서 오직 '시험 합격'과 '성공'만을 목표로 달립니다. 자기가 좋아했던 낚시, 산책, 친구들과의 우정 등 자신이 좋아하는 모든것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지만, 그곳은 학생들의 개성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규격화된 인재만을 강요하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한스는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아를 잃어버린 채 결국 학교를 자퇴하고 맙니다.

"지치지 않도록 조심하게,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로 깔리게 될 테니까"
수레바퀴 아래서 핵심 명언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본문 사진


소설속 이 구절처럼, 기성시대가 만들어 놓은 철저한 주입식 교육의 수레바퀴가 한 아이의 순수한 영혼을 어떻게 짓눌러버리는지 비극적으로 보여줍니다.


2. 《일론 머스크》 : 기존의 수레바퀴를 뛰어넘어 스스로를 교육한 독서와 탐구

반면 21세기북스의 《일론 머스크》 전기를 보면, 일론 머스크 본인이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된 과정은 기존 학교가 주는 주입식 교육 방식과는 완전 다른 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머스크는 결코 학교에서 말하는 '모범생'이 아니었습니다. 머스크는 지극히 사교적이지 못했고, 공상과학 소설(SF)과 비디오게임에 빠져 사는 몽상가에 가까웠습니다.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던 그를 키운 것은 학교의 수업이나 교사의 주입식 가르침이 아니라 '엄청난 양의 독서'와 '집중력', 그리고 '스스로에 의한 탐구'였습니다.


일론 머스크 전기 어린 시절 성적표 평가 내용 주입식 교육 비판


그는 하루에 9시간 이상의 책에 빠져들기도 했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체를 독파할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대학에서는 관심있는 분야의 논문을 모두 찾아 읽을 정도로 독서에 몰두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읽었던 다양한 서적과 공상과학 소설들은 테슬라와 화성로켓탐구, 스페이스X를 이끄는 현재의 그를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가스 대신 입자를 사용해 추력을 얻는 방식'과 같은 과학적 개념들을 스스로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독서를 통해 '지구를 넘어 다른 행성으로 가는 길'에 대해 인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론 머스크 자서전 아버지 사무실 독서 이온추진기 화성 탐구 본문 구절


학교라는 틀 안에서 교사가 주입해 주는 지식만 외우던 한스 기벤라트와 달리, 머스크는 본인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책을 파고들며 스스로 지식을 습득하고 지평을 넓히는 방식을 체득한 것입니다. 


3. 결론 : '수레바퀴'에 깔릴 것인가, 스스로 수레를 굴릴 것인가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답만을 외우다가 자신의 개성을 잃고 결국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 파멸했습니다. 타인이 정해준 길만 따라가는 주입식 교육의 끝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한스의 허무한 죽음은 정말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웠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 한스 기벤라트 삶의 목적 상실 주입식 교육 비판 본문 밑줄 구절


책속의 밑줄 친 문장은 한스가 왜 파멸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해줍니다. 스스로 삶의 목적과 내용을 채워보지 못한 아이는, 타인이 준 목표(시험 합격)가 사라지자 삶의 방향을 읽고 맙니다. 이는 100년후인 지금 우리 아이들이 마주한 비극이기도 합니다.

반면 일론 머스크는 기존 학교나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어린시절 스스로 몰두했던 독서, 몽상, 그리고 호기심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독학의 힘이 있었기에, 먼 훗날 기존의 관습을 깨고 전기자동차(테슬라)와 우주선(스페이스X)을 만드는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100년의 시차를 둔 두 인물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무엇보다 답답하고 씁쓸했던 점은, 100년 전 19세기 독일 신학교에서 아이들을 정형화된 틀에 맞추던 그 주입식 교육 시스템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하는 사실입니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남들과 똑같은 시험 점수를 위해 경쟁하고 암기 잘하는 아이들만 평가받는 구조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게 없습니다. 어떻게 이 길고 긴 세월 동안 교육의 틀은 이토록 변하지 않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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