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최진석 『건너가는 자』 – 타인의 답을 벗어나 나만의 경전을 쓰는 삶
우리는 흔히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이 말의 깊은 뜻을 온전히 이해하며 쓰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만함이나 독선으로 오해받기 쉬운 이 문장의 본래 의미를 최진석 교수의 『건너가는 자』를 통해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나'라면 경전을 읽고도 경전의 글자만을 따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숭배하지 않고 '자신만의 경전'을 쓰려고 '자신만의 길'을 나서겠지요. 붓다도 아니고 조사도 아니고, 이념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관념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가장 존귀한 자리에 둬야 하지요."
결국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위대한 사상이나 타인의 시선보다 '내 존재'를 가장 존귀한 자리에 두고, 수동적인 추종자가 아닌 주체적인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는 것.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강렬한 화두입니다.
1. 우리는 누구의 답을 살고 있는가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다 보면, 문득 열심히 달리고 있으면서도 "이 삶이 정말 내 것인가?"라는 공허함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은 바로 이러한 삶의 정체 상태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이미 만들어진 규칙의 편리한 소비자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하더라도 나만의 기준을 세워 나아갈 것인가를 묻습니다.
2. '대답하는 사람'에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의식의 전환은 '대답'에서 '질문'으로의 이동입니다. 시험을 치르듯 세상이 낸 문제에 모범 답안만 외워 제출하는 태도는 우리를 종속적인 존재로 만듭니다. 반면, 삶을 향해 고유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생각의 주인이 됩니다.
- 기존의 나: "어떻게 해야 사회적 기준에 뒤처지지 않을까?" (대답을 좇는 삶)
- 건너가는 자의 나: "나는 지금 무엇을 욕망하며,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은가?" (질문을 던지는 삶)
3. 익숙함의 언덕을 넘어: '바라밀다'와 '공(空)'
'건너간다'는 것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익숙한 관성과 타인이 인정해 주는 안락한 자리를 떠나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완벽하게 갖추어진 상태란 애초에 없으며, 결핍과 불안 속에서도 직접 발을 딛고 건너가는 과정 자체에서 인간의 탁월함이 완성된다고 말합니다.
책에서는 이를 불교의 '바라밀다(波羅蜜多)'와 '공(空)'의 개념으로 풀어냅니다.
- 바라밀다: 건너가서 도달할 어떤 이상적인 종착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 공(空):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기에 언제든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뜻이며, 이는 곧 우리가 끊임없이 건너갈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존재적·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4. 일상과 일에 적용하는 사유의 태도
이 책을 읽으며 가슴에 와닿은 실천적 지혜는 "완성된 지식에 기대지 말고, 매 순간의 현실을 감각하라"는 점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나 남들의 매뉴얼에 갇히지 않고,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유연하게 마주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타인이 던져준 신념을 따르는 삶은 편하지만 공허합니다. 조금 서툴더라도 내 발로 딛고 서서 한 걸음씩 강을 건너가는 것만이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자존감을 만듭니다.
[나의 시선] 내가 경험하고 정의하는 '건너가기'
책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깨달음에 이르고 싶다면 '스스로 규칙을 정해 부단히 반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복해야 영역이 넓어지고, 차이가 생기며, 그 차이 속에서 생각의 깊이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논어를 배우러 다니는 친구의 일화를 듭니다. 논어를 누구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좋은가에 대한 답보다, 졸린 눈을 비비며 매번 같은 거리를 찾아가는 그 '규칙적인 반복 행위 자체'야말로 진짜 논어를 체득하는 길이며 저자가 바라보는 '건너가기'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며칠 전,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넌 아직도 무언가를 그렇게 계속 공부하니?"
그 말을 듣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책을 펼치고, 하고 있는 일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익히며, 새로운 세상의 흐름을 알고 싶어 경제와 주식 책을 독파하고 실전 투자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안주해도 될 나이에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체된 물처럼 고여 있지 않고, 매일 규칙적인 배움의 반복을 통해 어제의 나를 넘어 새로운 지평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것이 바로 최진석 교수가 말한 '내 삶의 경전을 쓰며 묵묵히 강을 건너가는 과정'이 아닐까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맺으며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정답 속에서 흔들립니다. 하지만 세상에 나를 맞추려 애쓰기보다, 내 안의 고유한 존귀함을 믿고 매일 한 걸음씩 나만의 강을 건너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작은 반복이 만들어내는 그 단단한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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